90년대생을 위한 워터월드 (그때 그 감성 다시보기)
1995년 개봉한 영화 ‘워터월드(Waterworld)’는 당시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 제작비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블록버스터였습니다. 하지만 초반 흥행 실패, 엇갈린 평단의 반응, 과도한 기대 등으로 인해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특히 90년대생이 청소년기 혹은 어린 시절에 접했던 그 감성으로 되돌아본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 아니라 당시의 상상력, 모험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이 담긴 특별한 작품입니다. 본 글에서는 90년대생의 감성으로 ‘워터월드’를 다시 바라보며, 그때 그 시절의 분위기와 함께 영화의 매력을 총정리해 보겠습니다.
물 위의 세상, 그 자체로 하나의 상상력
90년 대생들이 어린 시절에 접한 ‘워터월드’는 그 설정만으로도 경이로운 세계였습니다. 지구의 빙하가 모두 녹아 육지가 사라지고, 모든 인류가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시대. 학교에서 배운 지리나 과학과는 전혀 다른 상상 속 세계가 펼쳐졌고, 어릴 적 그 세계는 낯설지만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마리너’는 물에 적응한 돌연변이 인간으로서, 아가미가 생기고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는 누군가의 영웅이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고립된 채 살아가는 외로운 생존자입니다. 육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그들을 노리는 해적 집단 ‘스모커스’는 각각의 생존방식과 욕망을 대변하며,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형태와 생존의 윤리를 보여줍니다. 어릴 적 보았을 때는 단순히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와 모험에 열광했지만, 이제 다시 보면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든 재앙 속에서 여전히 욕망과 충돌을 반복하는 인간 군상의 축소판입니다. 육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와 동시에 영화가 보여주는 배경은 90년대 특유의 ‘구현된 상상력’이 집약된 결과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모든 것을 CG로 처리하기 어려웠던 시절, 실제 세트를 바다 위에 만들고, 진짜 파도와 햇빛, 날씨 속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거칠지만 생생한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이 아날로그 감성이야말로 90년대생이 지금 다시 ‘워터월드’를 찾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 바다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인류의 과거이자 미래이기도 한 공간으로 재해석됩니다.
캐릭터와 감정선, 그리고 그 시절의 히어로상
‘워터월드’의 주인공 마리너는 히어로 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밝고 영웅적인 인물과는 다릅니다. 그는 처음부터 냉정하고, 사람을 쉽게 믿지 않으며, 자신만의 생존원칙을 고수합니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본 많은 90년 대생들은 이런 무뚝뚝한 주인공이 낯설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무표정 속에도 슬픔과 책임감, 그리고 점차 변화해 가는 인간적인 감정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마리너가 엔졸라와 소녀 ‘엔올라’를 처음엔 물건처럼 대하다가, 점차 보호하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그의 감정의 진폭을 드러냅니다. 이는 단순한 구조적 서사가 아니라, 고립된 인간이 타인을 받아들이는 ‘회복의 서사’이기도 합니다. 90년 대생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관계 속에서 상처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는 지금, 마리너의 변화는 더욱 깊은 공감을 줍니다. 엔 올라라는 아이 캐릭터도 단순한 ‘희망의 상징’을 넘어서 영화의 중심에 서는 존재입니다. 그녀의 등에 새겨진 문신은 전설 속 육지로 향하는 지도를 의미하며, 그녀를 둘러싼 희망과 공포, 보호와 착취의 감정들이 영화 전반을 지배합니다. 이 문신은 결국 인간이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에 대한 은유로, 90년대생이 성장하며 느끼는 불확실한 미래 속 적은 가능성과도 닮아 있습니다. 또한, 적대 세력인 ‘스모커스’의 리더 디컨(데니스 호퍼 분)은 전형적인 악당이지만, 동시에 90년대 영화 속 카리스마 있는 ‘만화적 빌런’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그는 무섭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모습이 공존하며, 시대 특유의 악당 캐릭터 구성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처럼 다층적이고 현실적인 빌런보다 오히려 당시 감성에 맞는 단순하고 명확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 시대의 영화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실패작? 재평가되는 이유
개봉 당시 ‘워터월드’는 엄청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비평과 흥행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었습니다. 언론은 ‘워터월드’를 “역대급 흥행참패”라고 표현했고, 영화 팬들 사이에서도 “너무 과했지만 너무 부족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지금 90년대생이 성인이 되어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미덕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첫째는, 제작진의 ‘실제 구현’에 대한 집착입니다. 1억 7천5백만 달러가 넘는 당시 기준 초거대 예산 대부분은 CG가 아니라 실제 바다 위에 세트를 짓고, 실물 배를 만들고, 대규모 촬영을 진행하는 데 쓰였습니다. 이러한 장인정신은 지금 보면 오히려 대단한 도전이자 진정한 영화예술의 열정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어릴 땐 그저 ‘와 크다’ 고만 느꼈던 그 장면들이, 지금은 ‘정말 저걸 찍었구나’ 하는 감탄으로 바뀌는 것이죠. 둘째는, 주제의식의 선구성입니다. 워터월드는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가 물에 잠겼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90년대에는 다소 비현실적인 미래처럼 보였지만,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이 현실로 다가온 2025년 현재에는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닙니다. 환경 위기, 자원 고갈, 인류 생존의 조건이라는 키워드는 지금 다시 보면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다가오며, 영화의 상징성과 가치를 더욱 높여줍니다. 셋째는, ‘워터월드’만의 독창적인 분위기입니다. 매드맥스와는 다른 수분 기반의 디스토피아, 황량하지만 거대한 바다의 풍경, 그리고 고립된 생존자들의 비극적 운명은 오늘날의 균질화된 SF영화 속에서 오히려 신선한 감성을 줍니다. 어릴 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장면들도, 지금은 정서적 여백으로 받아들여지며, 서사적 완성도를 더하는 요소가 됩니다. 결국, ‘워터월드’는 단지 실패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대를 앞서간 도전이었고, 시대를 품은 감성이었으며, 무엇보다도 90년대생이 어릴 적 가슴속에 심어둔 ‘다른 세상에 대한 호기심’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워터월드’를 본다는 것은 단지 옛날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순수하고 모험심 가득했던 시절을 다시 만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영화 ‘워터월드’는 실패작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90년대생에게는 어릴 적 상상력과 감정을 자극했던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부족한 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진정성과 상상력, 그리고 인간적인 감정선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아날로그적 특수효과, 선구적인 환경 메시지, 그리고 외로운 영웅의 성장 스토리는 지금 다시 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당신이 90년대생이라면, 오늘 다시 ‘워터월드’를 틀어보세요. 아마도 그 바다 위 세상 속에서 당신의 유년이 다시 출렁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