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씨름은 국민 스포츠로 불리며 지금의 프로야구나 축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중심엔 두 명의 전설적인 천하장사가 있었죠. 바로 강호동과 이 만기입니다. 당시 두 선수는 전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스포츠 스타로 군림했는데, 과연 이들이 선수 시절 얼마나 벌었을까요? 오늘은 과거 기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두 선수의 당시 수입을 현재 시세로 환산해 분석해 봅니다.
이만기, 1980년대 천하장사의 연봉은?
이만기는 1983년 천하장사에 등극하며 씨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10차례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며 ‘최강의 씨름왕’으로 불렸죠. 그의 수입은 당시로선 상상 이상의 수준이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 기준, 이만기가 씨름협회로부터 받았던 기본 연봉은 약 3,000만 원 내외, 승리 수당과 대회 상금까지 포함하면 연 5,000만 원~7,000만 원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방송 출연료, 광고 모델료 등이 포함되면 당시 수입은 연 1억 원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2025년 기준 물가와 평균 소득으로 환산하면 대략 연 5억~6억 원 수준입니다. 당시 중형 아파트 한 채가 2천만 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만기는 말 그대로 ‘억대 스포츠 스타’였던 셈입니다.
또한 그는 명절 특집 씨름대회에서의 우승으로 대형 후원사 상품, 자동차 등 부가 혜택도 다수 받았고, 방송 출연으로도 고정적인 수익을 올렸습니다. 1980년대 후반 KBS, MBC, SBS 모두 씨름 특집을 방송하며 출연료를 지급했고, 이만기는 당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얼굴을 비추는 씨름계의 셀럽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만기는 각종 지역 초청 씨름 행사나 대학 강연, 팬 사인회 등의 외부 활동에서도 수익을 올렸습니다. 특히 고등학생, 대학생 대상 체육 특강에서 받는 강연료는 한 회당 수십만 원 수준으로, 누적 수익은 상당했죠. 한편 당시엔 선수에 대한 기업 후원이 활발하지 않았지만, 이만기는 예외적으로 생활용품 광고, 건강보조식품 모델 등으로도 발탁되어 꾸준한 수입원이 있었습니다.
강호동, 씨름과 예능 모두 잡은 수입 천재
강호동은 1990년 천하장사에 오르며 당대 가장 젊은 장사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파워와 스타성 모두 겸비한 강호동은 단기간에 광고주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가 선수로 활동하던 1990년대 초반, 기본 연봉은 2,000만 원대, 천하장사 등극 시 수당과 포상금, 외부 행사비 등을 포함해 연 4,000만 원~5,000만 원까지 수입이 늘어났습니다. 1991년, 천하장사 우승 당시에는 차량을 부상으로 받고, 방송 출연으로 수백만 원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강호동은 씨름 외에도 행사 및 CF 출연으로 한 해 약 2~3편의 광고를 소화했으며, 1993년 은퇴 직전엔 연 수입이 약 1억 원에 근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를 2025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억~5억 원 수준이며, 이후 연예계 진출 이후 수입은 이보다 훨씬 상회합니다.
강호동은 씨름 선수 시절부터 엔터테이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당시 수입 구조도 경기력 외 다양한 활동을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전통 스포츠 스타 중에서도 드물게 수입 다각화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는 선수 시절에도 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능해, 각종 팬미팅이나 공개 이벤트에서 인기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당시의 희귀했던 '씨름 스타 팬클럽' 문화를 주도하며 관련 굿즈 판매 및 이벤트 행사에서도 부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강호동은 TV 예능에도 적극 출연해 '유쾌한 천하장사'로 각인됐으며, 예능 출연료는 씨름 경기 한 번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씨름 선수 수입 구조, 지금과 무엇이 달랐나?
1980~90년대 씨름선수의 수입 구조는 지금의 종합격투기나 스포츠 스타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본 연봉 외에 승전 수당, 대회 포상금, 후원사 물품, 지자체 후원금 등이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씨름은 민속 씨름과 실업 씨름의 이중 구조 속에서 전통 명절 특집대회를 통해 방송 노출이 많았기 때문에 광고나 홍보 출연이 잦았습니다. 강호동과 이만기처럼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들은 자체 브랜드 상품 판매, 팬미팅, 팬클럽 굿즈 등을 통한 부수입도 존재했죠.
현재의 연예인급 스포츠 스타 시스템은 이 시기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씨름은 그 초창기 모델이었던 셈입니다. 두 선수는 단순한 운동선수를 넘어 당시 대중문화 아이콘으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수입도 그에 비례해 고액을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씨름선수들은 협회로부터 제공받는 훈련비 외에 지방자치단체나 향토기업으로부터 후원금, 생필품, 차량 등을 제공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명절 시즌에는 지역 씨름 대회의 우승 상품으로 현금 외에도 금괴, 고급 가전제품, 부동산까지 제공된 경우도 있어, 일반인 기준에서는 상상 초월의 수입이었죠. 이러한 수익 구조는 지금의 계약 기반 프로스포츠보다도 훨씬 다양하고 유연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마무리
강호동과 이만기의 선수 시절 수입은 단순한 연봉을 넘어 대중적 인기와 미디어 활용도를 바탕으로 형성된 다각적인 구조였습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억대 스포츠 스타'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으며,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 시 각각 연 5억 원 이상에 달하는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스포츠 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들의 사례는 단순한 경기력 외에도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는 점을 시사해 줍니다.